Field Log · Entry
나는 관심이 많은 사람일까, 끝내지 못하는 사람일까
나는 여러 가지 주제에 관심이 많다.
통계 모델링을 공부하다가 AI로 넘어갔고, LLM과 Agent를 다루면서 백엔드와 시스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새로운 것을 접하면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하나를 만들다 보면 필요한 기술이 생기고, 그 기술을 들여다보다가 또 다른 주제가 눈에 들어온다.
GPT와 내 커리어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이런 평가를 들었다. 내게 남은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GPT의 평가 · 대화 요약
좋게 표현하면 열정적이고 실행력이 있는 사람.
냉정하게 표현하면 하나도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
정확한 평가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내가 스스로에게 묻고 싶지 않았던 질문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것을 해온 걸까. 아니면 많은 것을 시작해온 걸까.
통계 모델링부터 AI, LLM Agent, 백엔드까지 경험했다고 말하곤 한다. 경험한 기술을 나열하면 꽤 넓어 보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문장을 말하고 나면 스스로에게 한 번 더 묻게 됐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Agent에게 요청하면 구현할 수 있는 정도를, 내가 이해하고 있는 정도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Agent가 만든 코드를 읽으면 대체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것 같다. 수정할 부분도 보이고, 오류가 나면 함께 고칠 수도 있다. 그렇게 기능이 동작하면 이해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질문을 조금 바꾸면 자신이 없어진다.
왜 이 구조여야 하는가. 다른 방법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 유리한가. 요청이 몰리면 어디부터 느려지는가. 프로세스를 늘리면 메모리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장애가 발생했을 때 지금의 코드가 어떤 상태를 남기는가.
동작을 확인한 것과 동작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 사이에,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글에서는 같은 Agent를 사용하는 개발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번에는 그 질문을 내 경험에 대입해보고 싶었다. 내가 공부한 시간과 쌓아온 경험은 실제로 어떤 판단에 쓰이고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여러 분야를 접해오면서,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하고 새로운 접목을 이끄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통계에서 배운 사고방식을 AI에 가져가고, 모델을 실제로 쓰기 위해 Agent와 백엔드로 관심을 넓혀가는 과정이 내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어느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중이떠중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야를 연결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 연결을 이루는 각각의 기초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아직 그 질문에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경험을 모두 얕은 것으로 정리하고 싶지도 않다.
통계 모델링을 하며 던졌던 질문과 Agent를 만들며 만나는 질문은 분명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가정을 세우고, 결과가 정말 그 가정을 지지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서로 다른 분야를 경험했기에 볼 수 있는 연결도 있을 것이다.
다만 경험의 폭이 저절로 깊이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내가 연결해왔다고 생각한 지점들을 하나씩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통계 모델의 가정이 AI 문제에서도 성립하는지, 모델의 결과를 Agent가 사용할 때 무엇을 검증해야 하는지, 그 Agent를 백엔드 서비스로 옮기면 어떤 제약이 생기는지. 연결이 자연스럽다고 느꼈던 부분부터 다시 질문해보고 싶다.
그 과정에서 설명이 막히는 곳을 찾아 기초를 다지고,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한다.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이제는 그 연결을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여러 기술을 사용한 경험이 내 역량이 되려면,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판단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왜 선택했는지, 무엇을 포기했는지, 처음 생각이 어디서 틀렸는지. 그리고 실제로 확인한 것과 아직 추측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다시 ‘완성’이라는 말로 돌아오게 된다.
프로젝트의 완성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기능이 동작하면 완성일까. 배포하면 완성일까. 누군가 사용하면 완성일까.
모든 프로젝트를 거대한 서비스로 키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작은 실험도 끝낼 수 있다. 처음 던진 질문에 답하고, 결과와 한계를 기록했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앞으로 연습하고 싶은 것은 그런 끝맺음이다.
관심이 생겨 시작했다면, 무엇을 확인하고 끝낼 것인지 정해두는 것. 예상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도 그 이유를 살펴보는 것.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이번 작업에서 남은 답과 질문을 기록하는 것.
GPT와의 대화에서 나온 공부 방향도 정리해보았다.
GPT의 제안 · 대화 요약
시스템 기본기를 공부하고, 실제 프로젝트에 적용한다.
성능과 실패를 측정하고, 그 결과를 기록한다.
그중 내가 붙잡고 싶은 것은 공부할 기술 목록보다 공부한 것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메모리를 공부했다면 실제 사용량을 관찰하고, 예상과 달랐던 이유까지 확인해보려고 한다. 작더라도 질문 하나를 끝까지 따라가고 싶다.
Agent는 그 과정에서도 계속 사용할 것이다. 다만 답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질문을 끝내지는 않으려 한다. 코드를 이해했다고 느낄 때, 정말 설명할 수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이 블로그에는 완성된 결과뿐 아니라,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공부하게 된 순간도 써보려 한다. 잘못 세운 가정, 기대와 달랐던 측정 결과, 끝내 답하지 못한 질문도 함께 남기고 싶다.
이 기록이 쌓이면 나에 대한 평가도 조금은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열정적이다’거나 ‘끝내지 못한다’는 큰 문장 대신, 어떤 일을 어디까지 했고 무엇을 배웠는지로.
나는 여전히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다. 그 성향을 없애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앞으로는 관심을 가진 주제의 수와 함께, 끝까지 확인한 질문의 수도 세어보려고 한다.
내가 만들어온 연결점들을 돌아보고, 그 아래의 기초를 다지고,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는 시간. 이번 공부와 회고가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Reader questions
읽으며 남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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